2월 7일 설교말씀 - 신앙의 세 가지 모습 [눅9:28~35]
    2010-02-18 01:04:22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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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내면에는 두 가지 마음이 있습니다.

    안주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현실의 편안함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또한 변화를 기대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미래의 꿈과 비전을 가지고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개척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주님의 놀라운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고자 하는 세 제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의 반응을 중심으로 신앙의 세가지 모습을 점검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변화산 아래에서.

    변화산 위에서는 예수님께서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화되시는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변화산 밑에 머물러 있는 9명의 제자들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귀신들이 아이의 귀신을 좇아내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습니다.(37~43절)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을 당하고 있습니다. 변화산 아래 머무는 신앙은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은 하지만 믿음이 부족한 자들입니다.(41절)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기쁨과 감격이 없으며,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한 자들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런 사람들을 성전 뜰만 밟고 다니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 속에서 무서워하며, 두려워하며, 세상과 예수와의 선택 속에서 항상 예수를 외면하고 세상을 선택한 여지가 많은 사람들입니다.



    둘째는, 변화산 위에서.

    변화산에서 세 제자들이 목격한 것이 무엇입니까?

    얼굴이 해같이 빛나는 주님의 모습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체험한 신앙생활입니다.

    베드로는 세상의 궁궐에서 사는 것보다도 변화산에서 초막 짓고 사는 것이 더 좋겠다고 고백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 말에 동의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변화산의 초막을 위하여 세상의 부귀영화를 버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믿음의 최종 목표, 최종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변화산의 초막을 위하여 세상의 궁궐도 버릴 수 있는 믿음을 원하신 것은 바로 그런 힘, 그런 믿음, 그런 능력을 가지고, 이세상에 내려와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우리들의 일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현실의 축복에 안주하여 세상의 변화에 대한 관심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셋째는, 변화산 아래를 향하여

    변화산 아래서는 간질병환자를 아들로 둔 아버지가 아들을 예수님의 남아있는 제자들에게 고쳐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고쳐주질 못합니다.

    그 때 예수님은 내려오셔서 그들의 필요를 대체해주십니다.

    하나님과의 신비적인 체험, 성령의 은사라는 것도 굉장한 체험인데 그런 체험들은 이웃을 섬기고, 교회의 유익을 도모하는 사랑으로 표현되어질 때 비로소 값어치가 있습니다..

    변화산의 체험이 왜 필요합니까? 황홀경을 위해서 필요합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그 믿음을 가질 때 우리는 그 힘을 가지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바꾸고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이 일을 위해서 우리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일입니다. 이것이 변화산에 머물러 있지 않고 내려가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과 생활이 만나는 자리입니다.



    오늘날 교인 중에는 세 종류의 교인이 있습니다.

    변화산 아래에 있는 사람, 변화산 위에서 변화산을 체험한 사람, 그리고 변화산을 체험하고 세상에 나가서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 되어야 되겠습니까?

    사랑하는 문성 가족 여러분!

    여러분이 머물고 있는 신앙과 생활이 만나는 자리는 어디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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